※진단메이커에서 나온 대사 사용(제목)※데쿠가 죽을 게 뻔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는 전제※캐붕 주의 희망은 잔혹하다. 가장 아래에 숨어 모든 절망과 재앙이 휩쓰는 꼴을 보고 나서야 슬그머니 기어 나와 포기하지 말라 속삭이는 그것에 분노해보지 않은 자 있던가. 미도리야 이즈쿠는 동의했다. 그 또한 화가 없지만은 않았다. 다만 매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간절했을 뿐이었다. 몇억, 몇십 억분의 일의 확률로 자신의 꿈을 이룰 기회를 부여받은 운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다 놓아야 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쇠사슬처럼 무거운 미련을 질질 끌며, 흉한 질투가 흐르는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겠지. “그래서야.”“이, 멍청한 등신아!” 눈앞의 남자는 잔뜩 인상을 구긴 채 위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답답해..
※사망 요소 주의 고대 켈트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사윈Samhain 축제를 벌여 지상으로 올라온 악마와 마녀, 유령들을 위로했다고들 한다. 그러다 발생지를 넘고 현대로 와서는 시월의 마지막에 잭 오 랜턴이 익살맞게 웃는 축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지금의 정론이었다. 이렇듯 오락이 된 할로윈이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하나가 있다면,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날이라는 것일까. 일본 제일의 히어로 양성 기관인 유에이 고교라도 할로윈의 마력에서 빗겨날 수 없었는지, 온종일 트릭 오어 트릿이 제창되고 한껏 들떠 술렁거렸다. 하교 후 어떤 행사에 참여할지에 대한 수다와 교칙 위반을 두려워하지 않고 벌써부터 용감하게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이들까지. 모두가 즐기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여기, 작년 ..
※바쿠고와 미도리야가 성인이 되어 히어로입니다. ※비밀 연인이 된 지 몇 년이 흘렀다는 설정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현관 신발장에 들어선 미도리야는 늘 하던 대로 거실 소파에 시선을 주었다. 보통 때라면 그곳에 앉아 있을 바쿠고의 모습이 없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씻는 걸까? 이런저런 이유를 가볍게 추측해보며 제 방으로 간 미도리야는 깜짝 놀라버렸다. 엔간해서는 미도리야의 방에 오지 않던 바쿠고가 떡하니 침대에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왔냐.”“다녀왔어. 캇쨩, 내 방에는 웬일이야?” 용건이라도 있는 거냐고, 평소라면 나를 네 방에 데려가지 않느냐 물어오는 미도리야에게 바쿠고는 이리 오라 손짓했다. 미도리야는 순순히 다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많은 사건과 오해를 거쳐 연인이 된 둘..
※캐붕 주의※짧음 ※바쿠고와 이즈쿠가 웅영 3학년 얼굴 위로 투둑 떨어지는 물방울에 바쿠고는 움찔했다. 소나기가 내리려는 건가. 아침에 본 일기 예보는 그런 말 없었는데.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시야에 의아해하던 바쿠고는 자신이 눈을 제대로 뜨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통증이 온몸에서 돌다 못해 날뛰는 상황이라 저절로 눈에 힘이 들어갔던 걸까. 중력이 다리가 아니라 등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나자빠져 행동불능이 된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쪽팔리게 뭐냐고 이게. 바쿠고는 이를 갈며 일어서려 시도했다. 몸이 움찔거렸으나 그 이상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와중에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떠올렸다. 3학년이 되자 실전 투입에 슬슬 익숙해졌고, 실제 빌런과 마주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번에 신고를 받고 ..
※현대 AU※연하 하와이 피스톨x연상 옥윤. 나이차 주의※하와이 피스톨은 하 건, 미츠코는 화윤입니다. 어둑해진 하늘 아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일렬로 세워진 가로등 불빛을 보며 옥윤은 걸었다. 하늘 너머의 별보다 가깝고 그보다 싸늘한 빛이 집으로 가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 밤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니 이런 밤길이 되려 친숙해질 지경이었다. 쌍둥이 언니 화윤은 자신처럼 안전하고 편하게 집에서 하라 말렸으나 옥윤은 이게 편했다. 집과 독서실이 그리 먼 거리도 아니었고, 제법 호신술도 배워 두었으니 문제 될 것은 없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내년이면 드디어 악몽 같다던 고등학교 삼학년인지라 더욱 학업에 집중해야 했다. “어이.”“…?”“옥윤이 이제 왔냐?” 그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 하나 생긴 것만 ..
※별것 없이 짧습니다.※밤에 만나는 둘이 보고 싶었을 뿐... 하늘 높이 떠 있던 달이 슬쩍 내려와 나무에 걸렸다. 결코 만져볼 수 없을 아득한 존재가 고작 정원의 수목 하나에 잡힌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인지라, 그것에 눈길을 빼앗겨 창틀에 손을 짚은 옥윤의 몸이 슬쩍 밖을 향해 기울었다. 그렇게 조금씩 각도가 수평을 닮아가며 상체가 거의 창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불쑥 허리를 감은 타인의 손이 있었다. 옥윤은 멈칫했다. 달을 향하던 그녀의 시선이 제 허리에 닿은 팔로, 그 팔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막 불을 붙인 담배를 입에 문 사내였다.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가 그의 입가에서 피어올랐다. “위험하잖아. 그러다 떨어질라.”“내가 그럴 것 같아?” 여자라고는 해도 성인 한 명의 무게라면 상당히 나갈 텐데, 거..
※영화 '암살' 스포 有※영화 결말과 다릅니다. 0.조국을 떠나 멀리 만주 땅에 자리 잡은 신세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미는 척박한 그곳에서 힘겹게 저를 키우며 가끔 고운 옷 한 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속삭이곤 했다. 어렸던 아이는 그런 어미에게 엄마 하나면 충분하다며 고픈 배에서 울리는 소리를 부러 웃음소리로 가렸다. 품을 파고들면 거칠어진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녀를, 온기를 나는 아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톡. 톡. 톡. 가볍게 세 번, 노크라고 하는 행위는 방 안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있었다. 굳어 속에 맺힌 과거의 상념에서 깨어난 옥윤은 천천히 일어섰다. 문에 다가가면서 손에 무언가를 쥐고 발소리를 죽이는 것은 그간의 삶이 새겨놓은 부산물이다. 끼익, 기름칠이 ..
※해그시 트친오락관※설정 파괴 有: 리 언윈은 자발적으로 희생하지 않았다 네가 울던 밤이 떠올랐다. 남자는 유달리 쓴 맛이 나는, 식지 않아 김이 피어나는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설탕이나 시럽을 넣지 않은 순수는 평소 그가 만족하던 것이었으나, 오늘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 안에는 고전적인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열정을 쏟아 부은 연주가 최고급 스피커를 통해 손실 없이 장소를 채우는 것을 들으며 해리 하트는 책상 위에 내려놓은 잔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그 손길은 책상 위를 쓰는 것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상체 셔츠 단추를 촉감으로 인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어느덧 절정에 이른 음악이 발끝을 타고 온몸을 휘감았다. 해리는 눈을 감고, 자신을 감싸 안은 무형의 족쇄가 꽃을 피우기..
해리의 충고를 따르겠다는 말이 진심이었던 모양인지 에그시의 연애사는 한동안 잠잠하다 못해 땅 속 깊숙이 숨어버렸다. 가벼운 데이트를 지양하느라 재깍재깍 저녁이 되면 집에 들어갔더니 동생과 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웃음 섞인 투정을 부리는 에그시는 일견 익살떠는 광대처럼 보였다. 해리는 에그시의 넉살을 본 멀린과 퍼시벌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모른척하기 위해 지난 경험들을 되살렸다. 당신이 말할 줄 알았다는 의미가 담긴 것을 웃으며 받아넘기는 행위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글쎄다. 그렇게 무난한―맡아야 했던 임무의 난이도는 제외하고―일상이 얼마나 지났을까. 에그시가 폭탄선언을 한 어느 날은 모처럼 세계가 한가한 무렵이었다. 본부로 돌아와 마무리한 자신의 임무 보고를 끝낸 킹스맨들 몇이 같이 식사라도 하자며 ..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