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이 떠 있던 달이 슬쩍 내려와 나무에 걸렸다. 결코 만져볼 수 없을 아득한 존재가 고작 정원의 수목 하나에 잡힌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인지라, 그것에 눈길을 빼앗겨 창틀에 손을 짚은 옥윤의 몸이 슬쩍 밖을 향해 기울었다.
그렇게 조금씩 각도가 수평을 닮아가며 상체가 거의 창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불쑥 허리를 감은 타인의 손이 있었다. 옥윤은 멈칫했다. 달을 향하던 그녀의 시선이 제 허리에 닿은 팔로, 그 팔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막 불을 붙인 담배를 입에 문 사내였다.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가 그의 입가에서 피어올랐다.
“위험하잖아. 그러다 떨어질라.”
“내가 그럴 것 같아?”
여자라고는 해도 성인 한 명의 무게라면 상당히 나갈 텐데, 거뜬히 지탱하고 있는 팔은 단단했다. 사내가 평소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의 무게를 생각하면 당연할 터였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금속의 무게를 견딘 이들, 이를테면 옥윤의 동지들도 대부분 그랬다.
그러니 낯설 것 하나 없는데도, 의식해버리고야 마는 것은 왜일까. 옥윤은 잡힐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해답을 이번에도 잡지 못했다. 사내와 함께 있는, 그리고 그를 떠올리는 모든 순간마다 드는 의문은 끈질겼다.
이제 놓아. 부러 냉정히 답한 옥윤은 저를 잡은 사내를 떼어내려 그의 팔에 손을 올렸다. 사내는 순순히 그녀의 뜻을 따를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마 피우지 않은 담배를 껐다. 그리고는,
“이게, 무슨 짓이야.”
“글쎄― 뭐일 것 같은데?”
옥윤은 이제 완벽하게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몸이 제멋대로 굳어버렸다. 그녀가 자신이 숨을 삼켰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내는 옥윤이 저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가두었다. 그 의지가 힘으로 느껴지니 굳건하기 그지 없었다. 잠깐의 동요 끝에, 옥윤은 안기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의 가슴을 짚었던 오른손을 옮겼다. 옆으로 빼 사내의 등에 둘렀다.
“음?”
“…왜, 하지 말까?”
아니, 아니. 나야 좋지. 옥윤의 귓가 근처에 사내의 숨결이 닿았다. 옥윤은 자신의 얼굴이 달아올랐음을 사내가 쉽게도 알았을 거라 짐작하며 고개를 숙였다. 피부로 솟은 열을 알아차릴 정도로 그들은 붙어 있었으니까. 옥윤의 이마가 그의 어깨에 닿자 사내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녀의 옆머리를 넘겨주는 손길이 다정했다. 다정하다 느껴졌다.
그가 왜 이러는지, 자신은 왜 평소답지 않은지 옥윤은 여전히 몰랐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낯선 접촉과 타인의 체온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 시끄러워.”
“그렇지?”
사내의 온몸으로 박동하는 심장 소리가 옥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 세기가 자신 못지않았기에, 옥윤은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열린 창 너머의 달만이 나뭇가지 틈으로 이 밀회를 엿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