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위로 투둑 떨어지는 물방울에 바쿠고는 움찔했다. 소나기가 내리려는 건가. 아침에 본 일기 예보는 그런 말 없었는데.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시야에 의아해하던 바쿠고는 자신이 눈을 제대로 뜨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통증이 온몸에서 돌다 못해 날뛰는 상황이라 저절로 눈에 힘이 들어갔던 걸까. 중력이 다리가 아니라 등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나자빠져 행동불능이 된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쪽팔리게 뭐냐고 이게. 바쿠고는 이를 갈며 일어서려 시도했다. 몸이 움찔거렸으나 그 이상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와중에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떠올렸다. 3학년이 되자 실전 투입에 슬슬 익숙해졌고, 실제 빌런과 마주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번에 신고를 받고 간 곳에서 바쿠고는 작전에 따라 홀로 건물 내부에 잠입했다.
그의 실적은 우수했다. 더러운 성질머리라는 평을 묻어버릴 만큼. 그러나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특별한 살상력은 없다는 빌런의 개성에 방심한 것인지, 상대가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재빨리 탈출해 깔려 죽는 것을 피했으나 고층에서 떨어진 여파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캇쨩, 캇쨩! 정신 차려!”
회상하던 바쿠고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빗방울이 아니었다. 떨어지는 액체는 뜨거웠고 타인의 체온과 힘이 그에게 밀착해 있었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는 힘껏 저를 불러댔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부둥켜안은 채 혹시라도 위험해질까 차마 흔들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을, 바쿠고는 알고 있었다.
데쿠.
하필이면 이 멍청이가 제 한심한 꼴을 보다니. 바쿠고의 드높은 자존심이 들끓었다. 뭐라도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열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붉은 기침뿐이었다. 내장이 상하기라도 했는지, 피비린내가 훅하고 피어오르자 닿아오는 눈물방울이 더 빠르고 많아졌다.
“캇쨩, 제발… 죽으면 안 돼. 금방 지원이 올 테니까!”
안 죽어. 그것도 네 앞에서라면 절대 못 죽어. 바쿠고는 소리 없이 외쳤다. 자의는 아니라도 삶 대부분을 함께한, 기어코 불가능을 넘어 그의 완벽한 승리를 가로막는 녀석. 돌멩이라 치부해도 그게 아니라는 걸 3년간 죽어라 깨닫게 한 놈.
“욕을 해도 좋으니까, 싫어해도 괜찮으니까! 말해주기로 했잖아!”
바쿠고는 기억해냈다. 어젯밤 바쿠고 카츠키는 미도리야 이즈쿠의 마음을 들었다. 그가 무섭고, 싫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했었다. 받아달라는 의미는 아니라며, 알아주기만 해달라며 어렵게 웃는 미도리야는 고백하는 주제에 그에게 경멸당할 마음의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데쿠 네깟 놈이, 감히 나를? 호모 등신이라니 기분 나쁘다고. 바쿠고 역시 올라오는 혐오감에 바로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예상치 못한 지연에 당황해하는 미도리야를 남겨둔 채, 내일이라는 말과 함께 먼저 등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답을 미룬 스스로를 의아해하면서.
온몸이 마비된 것인지 통증마저 둔해졌다. 흐릿해지는 정신은 심연의 바닥으로 바쿠고를 끌어들였다. 미도리야의 목소리가 멀어져간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면서 출동 전 오늘의 일정을 정리했었다. 다녀오고 나면 데쿠를 만나자 생각했다. 뭐라고 하려 했더라. 꺼지라고? 다신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