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켈트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사윈Samhain 축제를 벌여 지상으로 올라온 악마와 마녀, 유령들을 위로했다고들 한다. 그러다 발생지를 넘고 현대로 와서는 시월의 마지막에 잭 오 랜턴이 익살맞게 웃는 축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지금의 정론이었다. 이렇듯 오락이 된 할로윈이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하나가 있다면,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날이라는 것일까.
일본 제일의 히어로 양성 기관인 유에이 고교라도 할로윈의 마력에서 빗겨날 수 없었는지, 온종일 트릭 오어 트릿이 제창되고 한껏 들떠 술렁거렸다. 하교 후 어떤 행사에 참여할지에 대한 수다와 교칙 위반을 두려워하지 않고 벌써부터 용감하게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이들까지. 모두가 즐기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여기, 작년 1학년 A반이었다는 공통점을 지닌 학생들만큼은 정도는 다를지라도 같은 우울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한 울적함이 아니라 달아오른 축제의 기운에도 묻히지 않을 슬픔이 그들에게 달라붙은 것이다. 그중 우라라카 오챠코와 이이다 텐야는 유독 기운이 없어 보였다. 우라라카는 눈가와 코가 붉어져서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고, 이이다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달래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학교 분위기에 휩쓸려 조금씩 설레다가도 금세 추억에 발목 잡혀 숙연해졌다.
바쿠고 카츠키는 자리에 삐딱하게 앉아 한껏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가 반의 침울한 공기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바쿠고는 늘 화가 나 있거나 귀찮아 보이는 불량함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로를 보듬던 아이들도 그에게만큼은 쉽게 다가가지 않았고, 한 명과 나머지로 나뉜 투명의 장벽은 하교를 알리는 종이 칠 때까지 굳건했다. 시간이 되자 바쿠고는 곧바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작년 이날, 미도리야 이즈쿠는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오늘은 그의 기일이었다.
*
바쿠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제 방으로 올라갔다. 쾅하고 방문을 닫은 뒤에는 매고 있던 가방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쳤다.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역처럼 축 쳐져 흐느적대는 반의 여럿도, 서럽게 우는 몇몇도. 무엇보다 싫은 것은 제대로 다스려지지 자기 자신이었다. 바쿠고는 이를 악물고 폭파를 일으킬 것처럼 위협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다시 한 번 속내를 통제해보려던 그의 시도는 큰 소리와 함께 솟아오른 폭파로 보아, 이번에도 실패한 듯했다.
‘젠장, 빌어먹을!’
하잘것없던, 신경을 벅벅 긁어댈 뿐이던 놈이 사라졌을 뿐인데. 일 년이나 지났으면서 이토록 이 몸에게 영향을 준다는 게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지 몰랐다.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는 기분이 끔찍해 바쿠고는 마구 머리카락을 헤집다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그렇게 팔로 눈을 가린 채 분기를 씩씩거리기를 한참, 어느 순간 깜빡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검은 시야로 많은 것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붙잡으려 들어도 금방 달아나버리는 무언가를 쫓는, 짧은 꿈을 꾼 것 같았다.
몽롱하니 침잠하는 그를 깨운 것은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정신을 차린 바쿠고는 벌떡 일어나 우선 벽에 걸린 시계와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을 확인했다. 어둑한 밖을 보아 벌써 저녁이 지난 것 같았다. 바쿠고를 깨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들기는 노크 소리는 일 층의 현관문에서 나고 있는 듯했다. 부모님은 옆집을 위로하고자 오늘 밤 옆집에서 자고 온다 하셨던 기억이 났다. 제 성질머리는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으니 쓸데없이 과자를 달라고 꼬맹이들이 온 것도 아닐 터였다.
그러면 대체 어떤 자식이 오밤중에, 그것도 하필이면 오늘 민폐인 거냐. 바쿠고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억지로 누른 채 걸음을 옮겼다. 눈치 없는 새끼를 단단히 혼내 주겠다 벼르는 그의 얼굴은 반의 누군가가 보았다면 악귀 혹은 나찰이 따로 없다고 할 만큼 흉악한 기세였다. 제대로 화풀이를 해보겠다며 손에 땀이 잘 모이도록 비벼대던 바쿠고가, 한순간 정지했다. 굳었던 몸이 금이 간 도자기가 깨지듯 마구 흔들렸다.
캇짱.
캇짱, 나야.
문 열어줘.
현관까지 고작 몇 발자국을 남긴 거리에서 바쿠고는 지금 자신이 들은 게 환청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제 삶의 대부분에서 들어왔던, 이제는 결코 들을 수 없을 목소리가 지금 문밖에서 나오고 있었다. 장난이라기엔 너무 심했고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뭔지 알 수 없을 상황이었다. 문을 두들기는 누군가가 다시 한 번 미도리야의 목소리를 내고 나서야, 바쿠고의 머리가 점차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명석한 두뇌는 금방 할로윈에 대한 한 가지를 떠올려 냈다.
‘죽은 놈들이 돌아오는 날… 이라고 했지.’
바쿠고는 천천히 남은 거리를 좁혔다. 문 앞에 선 그가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잡았다. 이제 잡은 고리를 돌리고, 밀기만 하면 밖이 보이리라. 쿵. 쿵. 쿵. 여전히 문을 두들겨대는 상대가 과연 그가 예상하는 이인 걸까. 바쿠고는 비웃었다. 그것이 되돌아온 멍청한 소꿉친구를 향한 것일지, 혹은 그렇게 믿고 싶은 스스로가 한심해서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캇짱. 캇짱, 문…
“등신이 시끄럽잖아. 늦게 온 주제에 뻔뻔하다고.”
바쿠고는 문을 열었다. 서늘한 밤공기가 바람을 타고 훅 들어왔다. 바쿠고는 눈을 깜빡였다. 눈앞을 제대로 확인해야 했다. 어둠이 그를 잡아끌었고, 꿀꺽 삼켰다. 진득하고 컴컴한 그것은 어쩌면 바쿠고의 내면에서 흘러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쌓이다 못해 넘치기 직전이었기에. 답지 않게 바쿠고는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