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이 다가왔던 그 날에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미도리야는 결정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새 또 무슨 일이 있구나 싶은 얼굴의 우라라카와 이이다의 협조를 받아 혹시라도 상대가 먼저 저를 부를까 봐 신경 써서 동선을 바꾸고, 단체로 움직일 일이 있어도 되도록 거리를 벌리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는 그럭저럭 성과가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전혀 부르지 않으니 호칭을 지적당할 일이 없긴 했으니까. 하지만 과연 바쿠고가 이런 미도리야의 거리 두기를 용납했다고 묻는다면, 글쎄다. 점차 사나워지는 상대의 시선이 금방이라도 미도리야를 죽일 것처럼 따라붙자 반 아이들이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한동안 너네 괜찮아 보였는데 또 왜 저러냐. 기억이 없어진 나머지 실수라도 한 거야? 저 녀석 엄청나게 쪼잔하니까..
※진단메이커에서 나온 대사 사용(제목)※데쿠가 죽을 게 뻔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는 전제※캐붕 주의 희망은 잔혹하다. 가장 아래에 숨어 모든 절망과 재앙이 휩쓰는 꼴을 보고 나서야 슬그머니 기어 나와 포기하지 말라 속삭이는 그것에 분노해보지 않은 자 있던가. 미도리야 이즈쿠는 동의했다. 그 또한 화가 없지만은 않았다. 다만 매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간절했을 뿐이었다. 몇억, 몇십 억분의 일의 확률로 자신의 꿈을 이룰 기회를 부여받은 운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다 놓아야 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쇠사슬처럼 무거운 미련을 질질 끌며, 흉한 질투가 흐르는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겠지. “그래서야.”“이, 멍청한 등신아!” 눈앞의 남자는 잔뜩 인상을 구긴 채 위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답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