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손목이 가늘다.
짧고 통통한 손가락을 지나 보들보들한 손등 아래로 이어진 그것은 앙증맞고 귀엽기 짝이 없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을 부드럽게
돌려주고 끄덕이게 하는 다재다능한 아이의 신체 일부를 남자는 줄곧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시선을 느끼고 무시할 수 없어진 아이가
남자에게 말을 걸 때까지, 계속.
“아저씨, 왜 봐요?”
이거요 이거. 남자가 보고 있던 손목을 흔들며 아이, 가람은 여차하면 도망갈 태세를 갖추었다. 아무리 청룡이 될 몸이라 해도 이
험한 세상에서 조심은 필수라 누누이 제 엄마에게 들었던 터인지라, 남자의 대답을 기다리는 가람의 눈은 상대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알아차릴 새도 없이 자신에게 다가와 가만히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에게 놀라고, 시간이 제법
흐를 동안 그 행동만 하는 것에 아이가 기껏 세운 경계심은 스르르 녹아 버렸다. 큰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자주 뵙지 못한
아버지가 해주지 않을까 상상하던 그것과 매우 닮아서 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아저씨 아닌데.”
“응? 키도 크고, 손도 크잖아요?”
“그러면 다 아저씨냐. 형이야, 형.”
봐라. 주름도 없고 잘생겼잖아. 남자는 가람의 머리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허리와 무릎을 굽혔다. 눈높이가 같아지자 가람은
올려다보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남자의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었다. 아직 심미안이 제대로 발달했다 보기에 어려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조화롭게 자리한 남자의 얼굴은 잘생겼다 느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가 남자
스스로 말한 그대로라서, 가람은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형은 이름이 뭐예요?”
“백건. 건이 형이라 불러.”
“네. 건이 형, 아까 내 손목은 왜 봤어요?”
어지간히 궁금했는지 기어코 이유를 묻는 가람의 손목을 잡아 쥐며 건은 답했다. 이러고 싶어서. 다 커서도 작은 건 비슷한데 하게
해주질 않거든. 알아듣기 힘든 뒷부분은 무시한 채 가람은 이 형이 말로만 듣던 변태가 아닐까 잠시 고민했다. 낌새를 알아챈 건이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으면 넌 벌써 어딘가로 끌려갔을 거라며 말하지 않았다면, 손목이 잡힌 채 붙어있는 상황이더라도 뿌리치려 했을지
몰랐다.
“그냥 너 닮은 형이 있다고 생각해라.”
“나 닮은? 건이 형은 그 형이랑 친해요?”
제 물음에 입을 닫아버린 건에게 가람은 다시금 물었다. 친해요? 그럼에도 말해주지 않는 건에게 가람은 발을 동동거리며 짜증을 내고
말았다. 이리저리 향하던 건의 시선이 다시 가람을 향한 뒤에야 가람은 궁금하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엔 아직 먼 이야기였다. 어떤 의미로는 그렇지. 그런데 그쪽은 열심히 아니라고 하더라고. 이리 말하는 건의 웃음에 왜인지
모르게 약이 오른 가람은 입을 삐죽였다.
“그 형은 진짜 싫어하는 거 아녜요?”
“그건 아냐.”
칼같이 잘라 말하는 건의 당당함은 흡사 밥 먹기 전에 간식은 없다는 규칙을 정할 때의 엄마와도 비견될 만했기에 가람은 더는 아니라
떼쓰지 않았다. 그럼 그 형은 어디다 두고 지금 나한테 이러냐고도 묻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더는 머리를 만져주지 않고
가버릴까 해서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도란도란 말을 나누는 시간도 어느새 끝이 다가왔으니, 가람은 어느새 하늘의 색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한테 분명히 혼날 텐데, 안절부절못하는 가람에게서 손을 뗀 건은 허리를 폈다.
“어쨌건, 이대로만 잘 커라.”
그럼 더는 바랄 게 없다고, 형은 이만 간다며 금방이라도 걸음을 뗄 것만 같은 건을 향해 가람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건이 형,
다음에 또 만나면 안 돼요? 살짝 놀란 건의 표정이 그럴 수 없다고 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에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가람은
물기가 그렁한 눈가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분명히 만날 거야.”
너야말로, 나 잊지 마라? 소리 내어 웃은 건이 원하던 말을 해주고 사라져 버리자, 가람은 나오려던 눈물도 쏙 들어간 얼빠진
얼굴로 그가 있던 자리를 멍하니 주시했다. 약속도 무엇도 아닌 확신을 하고 가버린 건이 정말 여기 있었던 걸까. 그렇게 혼비백산한
엄마가 저를 찾으러 올 때까지, 깜빡깜빡 연신 눈을 깜빡이며 가람은 진짜였을 거라 혼잣말을 반복했다.
'글 > 2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캇데쿠] 기다려줄래 (0) | 2015.11.02 |
---|---|
[캇데쿠] Day of the Dead (0) | 2015.10.31 |
[캇데쿠] A ring (0) | 2015.10.30 |
[캇데쿠] 무제 (0) | 2015.10.24 |
[건가람] The toy's secret (0) | 2015.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