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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2D

[미사와] Choose both L and F

서리달 2017. 9. 18. 19:37

사와른 전력 주제: 사랑과 우정 사이

※짧고 매끄럽지 않습니다.



같은 학교에 속한 학생이라면 대개 비슷한 일정을 가진다. 배우는 과목도 비슷하니 끽해야 동아리 활동의 여부와 종류의 차이나 다른 정도일까. 그런 하루의 쳇바퀴를 조금이라도 덜 지루하게 돌리고자 하는 생물의 본능은 각 반과 학년, 때로 전교를 통합하는 이슈를 만들고야 말았다. 일정한 주기라도 있는지 매번 지치지도 않고 찾아오는 화제에 소년소녀들은 기꺼이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달을 열중하고 고민했다.


이런 맥락을 타고 이번에 세이도 고교에서 새로 타오른 주제는 하굣길에,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아예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노래가 부르짖는 것에 대해서였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이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 당연코 사랑이다.


오직 그것뿐이라면 금방 소각당하고 끝났을 텐데, 생각이 다른 누군가가 맞설 수 있는 다른 요소로 저울의 균형이 맞았다. 사랑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게 아니라고, 저희 나잇대라면 우정이 더 소중하지 않겠냐는 타당한 반박이었다. 비율을 따지자면 애인보다 친구를 가진 쪽이 당연코 더 많으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사랑과 우정 중 무엇을 택할까?



*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시작했을 질문은 어느새 제멋대로 덩치를 키웠다. 함께 어울리던 한 무리에서도 각기 의견을 달리하는 바람에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절치부심 야구에 목매는 2학년, 사와무라 에이준도 이런 흐름을 피할 순 없었다. 만화책을 서로 빌려주곤 하던 같은 반 여자애들이 그를 둘러싸고 선택을 요구했다.


당황해 눈을 깜빡이던 사와무라는 마침 근처에 있던, 같은 야구부 동기인 카네마루를 잡아챘다. 귀찮아지기 전에 피하려던 카네마루의 노력은 투수의 유연한 어깨가 빚어낸 물귀신 작전에 실패하고야 말았다. 눈을 부릅뜬 카네마루가 당장 손 풀라고 작게 으름장을 놓자 사와무라는 나 혼자 두지 말라고 물고 늘어졌다.


“둘이서만 속삭이지 말고, 뭘 고를 거냐니까?”


데시벨 낮은 공방을 끝낸 것은 기다리다 못한 재촉이었다. 자주 인상을 구기지만 남을 잘 배려하는―사와무라를 챙기다 익숙해진 걸지도 모르지만―카네마루는 별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상대에게도 나름 성실하게 답했다. 그다운 의견이라며 소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른 남자애들에게도 제법 물어보고 다녀온 모양이었다.


“여자친구가 있다면 모를까, 딱히 사랑을 고르고 싶진 않은데.”

“운동부는 많이들 그쪽을 고르더라. 사와무라도 같은 의견?”

“으음, 글쎄―”


허나 기껏 선수를 쳐준 카네마루의 은혜를 저버리고 말을 흐리는 사와무라에게 여럿의 시선이 쏠렸다. 동기가 대답을 생각해낼 때부터 고민하던 소년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두 개 다 고르는 건 안 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겠지!”

“에이스를 노리는 애는 역시 욕심도 많구나?”


순정만화를 열심히 봐놓고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쉬워 보였냐며 타박이 쏟아졌다. 확실히 사와무라가 분위기 메이커가 맞긴 했는지, 제법 진지하게 선택을 종용하던 분위기가 그 혼자를 놀리는 쪽으로 바뀌었다. 한 발짝 멀어져 있던 다른 반 아이들까지 점차 더해진 야유는 사와무라가 괜히 입을 비죽이며 수업 종 쳤다고 답지 않은 지적을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

“와, 진짜 너무하지 않아요? 카네마루 녀석마저 같이 놀렸다니까요!”

“먼저 끌어들인 건 너 같은데? 딱히 억울해할 것 없지 않아?”


내내 부루퉁하던 사와무라는 정규 훈련과 개인 연습마저 끝난 늦은 밤 불평을 늘어놓았다. 들어주는 사람은 미유키 카즈야, 자신이 공을 받아주는 날인데도 사와무라의 기분이 나빠 보이자 의아해하던 포수이자 한 학년 위의 선배였다.


단둘이 자판기 앞에서 음료수 하나씩 뽑아 들고 오늘 있었던 서로의 일과를 나누고 나서야 이유를 안 미유키는 그만 웃어버렸다. 그야 남들이 고민해서 하나를 택할 때 둘 다 고르겠다니, 당연히 면박을 듣겠지.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거냐고 왁왁대는 사와무라의 어깨를 진정하라고 토닥인 미유키는 아직 처신이 부족한 후배에게 조언을 건넸다.


“아무거나 하나 말해두면 되잖아? 거기서 더 물어볼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게 더 편하니까?”

“흥!”


코웃음을 친 사와무라는 양팔을 교차해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저었다. 단호히 가로로 젓는 동작에 미유키는 조금 남은 음료를 마시다 말고 머리를 갸웃거렸다. 사와무라는 꾹꾹 감정을 담아 고했다.


“난 진짜로 다 선택할 수 있어요. 이미 그러고 있으니까.”

“―헤에?”

“또 모르는 척하지. 알고 있으면서 그러니까 더 얄밉거든요?”


사와무라가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미유키의 미소가 평소와 달라졌다. 이러면 곤란하다는 변화에 사와무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서로의 마음이 상대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선후배 겸 배터리의 거리를 유지하는 건 무엇보다 야구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암묵적으로 동의한 관계라지만, 가끔 저보다 쉽게 갈무리하고 아무것도 아니라 치부하는 듯한 미유키에게 서운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와무라.”

“알아요. 그만 말하라는 거잖아요.”


매번 이렇게 둘이서만 나와 있으니까 기합이 풀어져서라며 사와무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표정을 하는지 가리려는 의도를 읽어낸 미유키는 잠자코 사와무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이러는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도 가끔 정말로 이게 최선인지 되짚어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고작 한 살이라도 먼저 태어난 사람의 허세이자 인내였다.


“…둘 다 한 사람한테 느끼면 되지. 그냥, 그렇다고요.”


그 속을 모를 사와무라는 그저 어린 투정 한 마디를 더했다. 미유키는 사와무라와 자신 모두를 달래듯이, 매만지던 머리카락에 짧은 입맞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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