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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2D

[미사와] QnA

서리달 2017. 9. 18. 19:36


사와른 전력 60분 주제: 유성우

※주제랑 내용이 조금 따로 놉니다.



십 대 소년소녀가 가질 법한 취미란 무엇일까. 운동이나 패션, 독서 등이 딱 떠오른다지만 막상은 더 다양하다. 어떻게든 급을 나누려는 인간의 본성답게 암묵적인 우열이 있는 그것 중 오늘 화제가 된 하나는 그래도 제법 받아들여지는 종류였다.


“그거 봤어?”

“주말에 예매 잡아놨지. 너는?”


자와자와한 것은 스타워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작의 신작에 대해서였다. 딱히 영화에 흥미가 없던 사와무라도 주인공과 악역이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시리즈였다. 그래 봤자 아임 유어 파더 어쩌고 포스의 힘이 저쩌고, 서로 광선검을 휘두른다는 정도였으니 수박 겉핥기였다만.


“에이준 군, 혹시 이번 스타워즈 봤어?”


헌데 그 정도 흥미에 불과했던 주제가 설마 야구부에도 퍼져 있을 줄이야. 연습 도중의 휴식시간에 사와무라는 물을 마시다 말고 고개를 돌려 말을 건 하루이치를 보았다.


“설마 하룻치도 이 얘기를 할 줄은… 그 시리즈 잘 모르는데 재밌나 보네?”

“사실 나보단 형이 더 잘 알지.”

“엑, 형님이? 호러물 좋아하신다지 않았어?”

“그쪽 말고도 이것저것 보더라고. 나한테 같이 가자고도 하는 걸.”

“그으래?”


감탄사를 흘린 사와무라에게 슬금슬금 화제에 관심 있는 이들이 몰렸다. 인터넷 덕에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볼 수 있다면서 몇 편부터 보라 추천하는 몇 명 중에는 3학년도 있었다. 다음에 볼게요, 다음에! 진작 여기서 빠졌어야 했다고 사와무라가 후회하려던 그때였다. 대화에는 끼지 않고 근처에만 있던 후루야가 툭 나와 흐름을 끊어버렸다.


“그거, 우리말로 하면 별들의 전쟁인가?”

“후루야 군도 안 본 거야?”

“딱히 관심이 없어서. 야구가 더 재밌고.”


후루야 네놈, 나이스다! 사와무라는 자신에게 쏠렸던 주의를 돌려준 라이벌을 속으로 칭찬했다. 그거론 부족한지 작게 주먹을 흔들어 기어코 겉으로 표현까지 해버렸다. 대상인 후루야는 모르고 애꿎은 하루이치만 알아챈 칭찬을 마친 사와무라는 조심조심 발을 옮겼다. 흡사 고양이가 담벼락을 걷는 모양새에 가깝달까, 우스운 꼴이었다.


“―안 본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미유키 녀석도 그러려나?”

“글쎄? 누구 아는 사람 있냐?”


제 모습이 어떻건 간에 어서 도망가자고 슬금슬금 멀어지던 사와무라는 등 뒤로 들려온 누군가의 이름에 멈칫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를 생각하던 소년의 머리 위에 뜬 무형의 물음표가 느낌표로 변하는 일은 없었다. 그게 불만이라는 듯이 사와무라는 입술을 비죽였다.


“사와무라! 어디 가냐!”

“윽, 타이어 가지러 감다! 바쁘다 바빠!”


덩그러니 서 있으니 들킬 수밖에. 굳어있던 사와무라의 다리가 다시 열심히 움직였다. 누가 잡을세라 헐레벌떡 뛰는 사와무라가 무엇을 마음먹었는지, 여기 있는 사람 중  과연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


오늘은 투수들 공 받는 날도 아니겠다, 미유키 카즈야는 개인 연습까지 끝나자 바로 기숙사로 향했다. 스코어북 정리나 수업 때 내준 과제 등 소소하게 챙길 게 많아 조금 일찍 방에 돌아와도 시간은 금방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불 켜진 스탠드 아래로 한 손엔 펜, 다른 손으론 종이를 넘기던 미유키는 탕탕 문에서 나는 소리에 앞으로 쏟았던 상체를 세웠다. 차분하지도 작지도 않은 노크는 차라리 두드리는 것에 가까웠다. 미유키는 이미 누가 이러는지 알고 있었다.


“사와무라, 전에도 살살하라 그랬지?”


야구에선 재깍재깍 사인을 잘만 알아들으면서 왜 그래. 가벼운 핀잔을 던지면서도 미유키는 순순히 문을 열어주었다. 귀찮을 때도 있지만 보고 있으면 질리지 않는 후배니까. 딱히 문전박대할 필요 없잖아? 미유키는 혼자뿐인 방에서 누구건 들으라는 것처럼 이유를 댔다. 밖에서 여럿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사와무라가 혼자만 온 듯할 때면 그는 매번 이랬다. 자신의 감정을 덮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미유키 선배!”


역시나 사와무라 에이준이다. 미유키는 금방이라도 품에 달려들 듯한 소년을 피해 한 발짝 물러섰다. 물론 사와무라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걸 어쩌겠냐고. 미유키의 속내를 모를 사와무라는 냉큼 안에 들어섰다. 휘휘 방을 둘러보고 혼자 있냐 묻는 사와무라에게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만화책 읽으러 가져왔어?”

“물론 그럴 거지만, 아니 그 전에! 오늘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슴다!”


어라. 본론이 따로 있으시단다. 예상외의 말에 미유키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야구에 대해서려나? 다른 녀석들과 함께 들을 땐 몰랐던 걸 그냥 넘긴 걸까. 제대로 에이스 경쟁을 할 만큼 성장한 사와무라가 향상심을 가지고 있는 건 그의 공을 받는 포수로서 기쁜 일이었다. 그러면 미유키 카즈야 개인으로는? 물론 좋았다. 씻고 바로 뛰어왔는지 머리카락이 여전히 젖어있는 사와무라를 일대일로 볼 수 있다는 게 특히나 그랬다.


“뭐가 궁금한데?”


도로 의자에 앉은 미유키가 너도 일단 앉으라며 침대를 가리켰다. 순순히 따른 사와무라가 빤히 저를 바라보자 미유키는 생각했다. 얘가 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너무 그렇게 진지하게 보지 않아도 된다 말하려던 때, 사와무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유키 선배. 별들의 전쟁 본 적 있어요?”

“응?”


둘은 동시에 침묵했다. 기억을 뒤지는 미유키와 달리 사와무라는 아차 싶었다. 아까 들었던 번역이 머리에 꽤 남았는지, 그만 제멋대로 툭 나와버린 것이다. 후루야아아아아! 원망할 테다! 칭찬했다는 건 잊었는지 저주하듯 얼굴을 구긴 사와무라에게 미유키의 알았다는 듯한, 괜한 불안감을 주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 스타워즈? 최근에 뭐 개봉했다며?”

“알고 있었네요?”

“건너건너 들려오는 건 있으니까.”


그래, 이 정도로 넘어가 주면 딱 좋았을 텐데. 짓궂은 미유키 카즈야는 도무지 사람의 실수를 그냥 넘어가 주는 법이 없다. 진짜 얄밉고! 짜증 나게!


“직역한 것도 괜찮네. 그냥 영어로 부르는 거랑은 다른 맛이 난다고 할까, 너다운데?”

“무슨 뜻임까?”

“가끔 잘 안 쓰는 단어나 사자성어를 쓰곤 했잖아. 경기 도중에 어필할 때 특히.”

“아, 쫌! 방금은 내가 생각한 거 아니라고요?!”


다들 날 야구만 아는 바보로 아는데, 후루야 그 녀석이 더하거든요? 사와무라는 훈련 뒤 야구부원들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를 요약해 들려주며 항변했다. 가만히 듣다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여주던 미유키는 사와무라가 그럭저럭 숨을 고를 즈음에 와서야 원점을 찔렀다. 그래서, 스타워즈 봤냐고 물어보러 온 거야? 굳이?


“그것도 있지만, 실은 그 뒤에 혼자 생각한 게 있거든요.”


왜 내가 여기 왔더라. 사와무라는 훈련장에서 자리를 벗어날 때부터 샤워실로, 미유키의 문 앞으로까지 이어지던 상념을 다시 떠올렸다.


“별들의 전쟁이라고 하니까, 우리한테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슴다. 세이도 말고도 다른 학교 선수들 모두 빛나려고 노력하잖아요. …인정하긴 싫지만, 그 많은 별이 다 떨어져 내려도 선배는 딱 하늘에 매달려 있을 것 같아요.”

“인정하기 싫다니. 선배한테 너무하잖아.”


사와무라는 작게 끼어든 미유키를 가뿐히 무시했다.


“재능만으로 여기 온 게 아니라는 것도 알거든요. 최소한 나만큼은 야구를 정말 좋아하고, 주장에 정포수 역할 하느라 늘 바쁘고, 꼭 이기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지.”


하나하나 미유키가 어떻게 야구를 하는지 짚던 사와무라는 다시 입을 닫았다. 할 말은 남았으나 이걸 과연 밖으로 내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막연한 얼굴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뱉었다.


“나도 그런 선배한테 매달려서라도, 아예 기어 올라 가장 높이 떠주겠다고 그랬는데… 저, 여기서 끝내고 가도 됨까?”

“그러라고 해줄 거라 생각해?”

“역시 아니죠?”


아, 젠장. 뒷머리를 벅벅 긁은 사와무라는 될 대로 되라는 듯이 말을 마저 던졌다. 본인의 특기인 무빙볼처럼, 이리저리 튀지만 결국 들어가는 곳은 포수의 미트 하나인 것마저 닮아 있었다.


“거기까지 가니 또 궁금해져서. 당신은 영화를 봤을까? 야구 말곤 뭘 할까? 한 학년 위라 수업 내용도 교실 층도 다르니 아는 게 없어서, 그냥 마음이 급해졌다고요.”


자신은 바보가 아니라고 한 번 더 강조하면서도 그 이유까진 모르겠다고 끝맺은 사와무라는 툴툴거림으로 민망함을 가렸다. 별 용건이 아니었건만 아무 말도 없는 미유키에게 신경이 쓰였다. 역시 아까처럼 놀리려나. 다른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될 거였는데 괜히 온 건가. 상황에 맞지 않는 긴장으로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던 사와무라는 문득 미유키에게 시선을 던졌다. 영 뒹굴거릴 분위기가 아니니 이쯤 가보겠다 내빼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판단하려던 찰나였다.


“…미유키?”

“안 돼.”


처음 보는 상대의 표정에 사와무라가 다소 얼떨떨해진 틈을 노려 미유키는 입을 열었다. 단칼에 자른 거절에 사와무라는 반쯤 관성으로 반박했다.


“너무해! 착한 후배가 좀 물어보는데 그까짓 게 뭐라고!”

“프라이버시란 소중한 거야. 그리고, 비처럼 별이 떨어져 보이는 걸 뭐라고 하는지 알아?”

“그 정돈 나도 알거든요? 유성우잖아요.”

“네가 나라면 거기서도 버틸 것 같다며. 그 정도면 독보적인 존재란 거겠지? 그런 나에 대한 건데, 하찮게 굴 순 없잖아?”

“으으윽…!”


이 인간이랑 말을 섞어서 좋은 꼴이 된 적이 없어! 말빨에 밀린 사와무라는 분기만 삼켰다. 평소의 미소를 되찾은 미유키는 그런 사와무라를 달래듯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정 못 참겠으면 관찰해보던가.”

“엥?”

“알고 싶은 만큼, 내게서 눈을 떼지 말아 보라고.”

“자신 있어요? 숨기고 싶은 것까지 보면 어쩌려고? 말 바꾸기 없슴다?”


화내다 말고 그새 넘어가 다 파헤쳐주겠다 다짐하는 사와무라 몰래, 미유키는 조금 더 짙게 웃었다. 이제 사와무라는 더 자주 자신을 찾고 생각할 터였다. 제 마음을 거의 자각했다지만 드러낼 의사는 여전히 없었다. 그래도 네가 좀 더 나를 봐주면 좋겠다는 마음 정도는 채워도 되겠지, 사와무라?


찬스에 강한 남자는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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