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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2D

[미사와] 어느 주말, 찰칵!

서리달 2017. 9. 18. 19:35

※미정발 요소가 들어갑니다.

※날조 있습니다.



극소수의 조심성 많은 이들을 제외한다면, 누구나 고의가 없다 할지라도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에게 피해를 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이도 고교 2학년, 사와무라 에이준은 당연히 소수의 예외가 아니었다. 나가노의 건강한 남아답게 그간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러왔던가. 허나 그런 사와무라도 지금 상황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 망가졌슴까?”


정황은 단순했다. 사와무라가 야구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며 미유키를 찾아간 이래로 이따금 다른 녀석들도 주장에게서 수업에 가까운 설명을 듣곤 했다. 장소는 자연스럽게 미유키의 기숙사실이 되었고, 사와무라는 주도자답게 남들이 안 올 때도 자주 들락거렸다. 점차 자신의 베개를 밑에 깔고 만화책을 읽거나 과자를 먹는 사와무라를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 미유키와 매번 표정으로 질색하는 오쿠무라의 차이가 극명했다.


“이런, 아예 안 켜지는 것 같은데?”

“…충전이 필요해서 그런 건?”

“배터리 꽉 채워둔 게 두 시간 전이야.”

“으윽!”


이대로만 갔으면 좋았을 것을, 문제는 사와무라가 늘 그렇듯 큰 동작으로 움직이다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어깨가 결리는 것 같다며 이리저리 움직이던 사와무라의 팔이 그만 미유키의 물건이 여럿 놓인 책상을 쳤고, 그중 핸드폰은 하필 모서리 근처에 있던 바람에 직격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미유키와 팔을 휘두른 당사자인 사와무라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 핸드폰을 잡지 못했다. 예상보다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커서 사와무라는 움찔해버렸다.


“죄송합니다아아!”


몇 번이고 전원을 켜보던 미유키가 글렀다며 가볍게 한숨을 쉬자 사와무라는 잽싸게 무릎을 꿇었다. 의욕만 앞서던 사고뭉치 일학년일 때도 안 하던 실수를 왜 이제 와서, 동기도 아니고 분하지만 선배에 속하는! 미유키에게 저지르다니. 사와무라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졌다.


‘좀 친해졌답시고 빠져 있었냐고!’


석고대죄하는 자세가 된 사와무라는 먹통이 된 핸드폰을 쥔 미유키가 악당 같은 미소를 짓는 걸 미처 보지 못했다. 미유키가 화를 내긴커녕 나긋한 어조로 차분히 저를 부르자 사와무라는 고개만 위로 들었다.


“사와무라.”

“옙!”

“수리보다는 그냥 하나 새로 사는 게 나을 것 같거든? 오래 썼으니 슬슬 바꿀 때가 되긴 했고, 반반 부담하는 건 어때?”


바닥에 한 번 떨어졌다고 바로 고장 난 미유키의 핸드폰은 오래된 구식이었다. 딱히 불편하지 않다며 오랫동안 써왔다만 수리를 맡겨도 데이터가 복구될지 확신할 수 없다고, 시중에 나온 중저가 스마트폰 중 적당한 것을 골라 사는 게 고치는 비용보다 쌀 거라는 미유키의 설명에 사와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만 낸다 해도 몇 달은 용돈이 빡빡할 테지만 일단은 상황이 해결되어 간다는 안도감이 얼굴에 역력했다. 공짜폰도 괜찮다고 말하면 선배가 최고라고 해줄지도 모르겠는데. 실없는 생각을 한 미유키는 사와무라가 제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진짜 목적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사와무라, 주말에 시간 비워 놔.”

“엥? 왜요?”

“같이 사러 나가야지. 난 이런 쪽은 잘 모르니까 네가 사전에 잘 알아보고 오라고.”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황금 같은 주말 휴식을 왜 댁한테 써야 하냐는 사와무라를 미안하지 않은 거냐는 한 마디로 단번에 침묵시킨 미유키는 끝내 제 뜻을 관철했다. 나가면서 거칠게 닫은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쿵쾅대는 걸음 소리가 복도 너머로 멀어져도 미유키는 딱히 불쾌해하지 않았다. 제 죄를 아니까 따르겠지만 늦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사와무라가 아무리 씩씩거려봤자, 이미 약속은 된 것이다.



*

기약한 주말이 되어 둘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상점가에 도착했다. 가득한 사람들 중간중간 광고지와 휴지를 나눠주거나 할인 중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로 거리는 한층 소란스러웠다. 간편한 사복 차림의 사와무라는 옆에 있는 미유키에게 저 군중 사이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냐며 시답잖은 농담을 던졌다.


“지쳐 쓰러져도 안 잡아줄 겁니다!”

“체력과 체격 모두 내가 위일 텐데, 먼저 지치는 건 너 아닐까?”

“이 사와무라 에이준, 몸과 정신 모두 작년과는 달라졌거든요?”


괜찮은 것으로 골라달라며 데려온 주제에 실은 적당히 직원이 추천해주는 기종으로 하려던 미유키의 예상과 달리, 사와무라는 정말 제대로 조사를 해온 모양인지 이것저것 따져 묻기 시작했다. 문자와 전화만 잘 되면 됐지. 할부니 뭐니 알 게 뭔가. 금방 흥미를 잃은 미유키는 사와무라를 구경하며 지루함을 달랬다. 야구가 아닌데도 고심하고 눈을 반짝이는 소년은 충분히 바라볼 가치가 있었다.


“얼굴 뚫어지겠네. 원하는 기종이 있음 말로 하라고요.”


이런. 티를 안 낸다고 했는데도 꽤나 성실히 봐버렸는지 사와무라가 눈치를 챘다. 미유키가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손을 내젓자 사와무라는 자기가 열심히 고르면 뭘 하냐고, 쓸 본인이 저 모양이라고 툴툴거렸다. 미유키는 이따 자기가 밥을 사겠다는 말로 사와무라가 토라지는 것을 막았다. 냉큼 받아들일 것 같던 사와무라는 자기도 염치가 있다며 좋은 마음 반, 이래도 되냐는 마음 반으로 물었다.


“제가 고장 내서 여기 오게 된 건데, 그래도 되는 검까?”

“이렇게나 열심히 해주니 감동 받아서 말이지. 슬슬 배고플 때기도 하고. 라멘이나 먹을래?”

“…그럼 더는 사양 않고!”


기운이 오른 사와무라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곧 미리 준비한 보호자 동의서를 내고 절차를 마치자 흠집 하나 없는 스마트폰이 미유키의 손에 들어왔다. 분명 마음에 들 거라며 뿌듯해하는 사와무라가 이만 먹으러 가자고 재촉했다. 둘 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적당한 가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창 혈기왕성한, 그것도 운동부인 남고생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멘 그릇을 해치우는 시간은 평균보다 한참은 짧았다.


“잘 먹었습니다! 국물이 끝내주던데요?”

“너랑 같은 걸로 시킬 걸 그랬나. 맛없진 않았지만 아쉽네.”

“난 선배 것도 맛있었는데, 바꿔 먹어도 좋았겠다.”

“그러게 말이야.”


한입씩 바꿔먹은 소감도 나눴겠다, 곱빼기로 시키길 잘했다며 부른 배를 두드린 사와무라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계산을 마치고 느긋하게 걷는 둘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조금 전에 산 스마트폰으로 옮겨갔다. 미유키가 최신형을 안 골라 용돈이 덜 깨졌다는 말부터 앞으로 새것으로 무엇을 할지 등에 대해서였다.


“데이터는 다 날아간 거죠?”

“그렇겠지. 일단 오늘내일은 급한 것부터 다시 채워 넣으려고.”

“대신 입력해드려요? 양 많을 텐데.”

“딱히? 저장한 메일 주소나 연락처는 원래 별로 없었어.”

“맞다, 미유키 선배 친구 없었지!”


동기인 하루이치가 봤다면 너무 솔직했다고 타박할 진실이었지만 미유키는 신경 쓰지 않고 사와무라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뭘 하냐고 묻자 여상한 태도로 답이 돌아왔다.


“기왕이면 화질 좋은 게 낫다고 아까 네가 그랬잖아. 한번 시험해보려고.”

“핫, 제가 또 한 모델 하죠! 미래의 에이스다운 포즈라도 취하면 됩니까?”

“그보단 네가 잘 짓는 이상한 표정 있잖아. 그거나 해보지?”

“미유키 카즈야아아아!”


어째 오늘은 잘 넘어간다 싶더라니, 기어코 멱살이 잡혀 흔들리던 미유키는 이러다 폰 떨어뜨리겠다는 말로 사와무라를 진정시켰다. 몇 걸음 떨어져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사와무라에게 미유키는 웃으라며 다시 카메라 앱을 켰다. 흥! 내가 지금 웃게 생겼냐고! 사와무라는 자신을 달래지도 않고 저러는 미유키에게 더 발끈했다.


“시킨다고 내가 할 것 같…!”


사와무라는 말을 멈췄다. 자기를 따라 웃어보라며 둥글게 휘는 눈꼬리와 시원하게 올라간 입매가, 얄미운 미유키 카즈야 주제에 순간 반짝거려서 정신이 팔렸다. 심장도 따라서 맛이 갔는지 덩달아 쿵 내려앉았다. 이전에도 가끔 생기던 현상은 낯설지 않았다. 미유키의 방에 있을 때 이만 돌아갈 시간이라고 제 어깨를 두드리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주로 그랬다. 왜 그러는지는 몰랐다. 이유를 파헤치려고 하면,


찰칵.


지금처럼 꼭 신경을 돌리는 일이 생기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아직 웃지도 않았는데 찍다니 치사하게! 표정 관리를 못 했다며 사와무라가 항의하건 말건, 꿈적도 하지 않고 꼼꼼히 저장까지 확인한 미유키는 성큼 먼저 걸음을 옮겼다. 물음표로 채워졌던 사와무라의 머릿속은 미유키의 뒤를 쫓아가느라 말끔해졌다. 이 또한 익숙했다.


“지우고 다시 찍으라니까!”

“싫―어♡”


등 뒤에서 사와무라가 왁왁댔지만 미유키는 이번엔 쉽게 잡혀주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빨리 다리를 움직이면서 생각했다. 왜 멍해 있던 건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만, 아직 자각시키고 싶지 않은 제 속셈에 홀딱 넘어온 게 귀엽다고. 미유키는 사와무라가 적어도 자신이 졸업할 때까진 모르는 채로 있어 줬으면 했다. 고시엔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투수를 마음고생 시킬 생각은 없으니까. 거기에 사심을 더하자면, 저 녀석이 자기 마음을 깨달아 지금보다 더 의식이라도 했다간 이쪽이 곤란해진다.


‘참기 힘들어진다고. 지금도 가끔 아슬아슬하단 말이지.’



기숙사로 돌아가 적당히 보고 지우겠다던 미유키가, 실은 몰래 계속 보존하고 있다는 걸 사와무라가 알게 되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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