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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2D

[캇데쿠] 무제

서리달 2017. 9. 18. 19:31


※1인칭 주의

※손풀기용 단문이라 짧아요.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중 내게는 다른 사람이 들으면 놀랍다 여길 법한 것들이 많았다. 소중한 것도 있고 발판 삼아 앞으로 주의해야 할 것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가장 선명한지는 나의 스승과 친우와 적들 모두에게 미안하게도, 그들이 아닌 하나뿐이었다.


너에 대한 것.


기연을 만나 뒤따르고 마주할 수 있게 된 나날이 지난 나에게 너는 분노했다. 그런 너는 마주하기 그저 껄끄러웠다. 싫지만 대단해서 눈을 뗄 수 없다. 그게 내가 너에 대해 정의한 전부였다. 바꾸기엔 입에 너무 붙은 애칭 같은 별명도, 익숙하다 못해 줄줄이 꿰고 있는 네 패턴도 혐오 섞인 동경 때문이었다. 소꿉친구라는 이름표를 달기엔 부끄러울 만큼 친밀하지 않았다.


그날까지는 그랬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하지만 너와 내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서로 어울리던 각기 다른 아이들이 모두 볼일이 있다고 먼저 가버린 빈 교실이라니. 가방을 챙기는 손짓이 빨라진대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간 너를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맹세코 이런 불편함은 손에 꼽았다. 둘만 있어야 한 경우는 대개 맞서야 할 적을 앞두거나, 한차례 맞붙은 뒤 패배를 앞두고 역전해야 할 때였다. 나는 망설였다. 사이가 어쨌건 같은 반인 상대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기는 조금, 마음에 걸렸다.


“캇짱, 먼저 가볼게. 내일 봐.”


그래 봤자 이런 게 고작이었지만, 나름대로는 고심 끝에 전한 인사였다. 잠깐의 침묵을 견뎌도 너는 아무 말 없었다. 나는 어색함을 지우려 서둘러 일어섰다. 괜히 했다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 어서 나가고 싶었다.


막 교문을 향해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삐걱대며 의자가 뒤로 밀려나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와버린 일말의 당황과 섞였다. 상황을 인식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네가 내 손목을 쥐고 있었다. 멈추라는 의미를 담아 가볍게 막아선 수준을 넘어 확실하게, 꽉 압박했다.


“어딜 가냐.”

“그거야, 집에….”


말하면서도 턱턱 숨이 막혔다. 네가 하는 행동의 이유는 전략적인, 혹은 일상적인 것으로 나누어 짐작할 수 있었고 그것들은 대부분 맞아 들어갔다. 스토커라 불렸을 만큼 나는 너를 관찰해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모든 데이터로도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적의도 조롱도, 하다못해 사소한 지적을 위해서도 아닌 것 같았다.


혼란스러웠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의식이 되어 힘들었다.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네 눈빛은 너무 짙었다. 어둡고, 투명한 붉은 기 어린 홍채가 열렬했다. 놓아달라 부탁하자니 혀가 멋대로 꼬였다. 부끄러웠다.


“놔, 놔주지 않을래?”

“…싫은데.”


이런 너를 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이렇게 가까이서는 한 번도. 잡힌 손목이 데일 듯 뜨겁게 저렸다. 네 손 모양 그대로 자국이 날 법한 열기에 고통스러웠다. 충격이 나를 들쑤셨다.


이후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도, 하교하는 내내 너는 그 이상의 무엇도 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아프다 해봐도 그저 묵묵히, 나를 붙잡은 채 집으로 향했다.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고, 무시의 종류도 평소와 달랐다. 집 앞에 와서야 너는 연결을 풀었다. 꽉 잠긴 목으로 왜냐고 묻기가 무서워서, 나는 휙 몸을 돌려 가버리는 네 등만 봤다.


의문, 의문만이 가득했다. 며칠간 나는 매일 몸부림쳤다. 호기심이라기엔 무거웠다. 해프닝으로 넘어가기엔 절박했다. 손목에 남았던 흔적은 날이 지나면서 옅어져 사라졌건만, 내 안의 너는 달라진 그대로였다.



그 뒤로도 한참이 지나서야 그게 네가 바란 변화였음을, 걸려들고야 말았다 깨달았다. 네가 먼저 앞서 고민했고, 노을 진 그 날이 낙인처럼 속에 눌어붙은 게 나만이 아니었단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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