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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2D

[캇데쿠] Please, Love me

서리달 2017. 9. 18. 19:30


※중학교 졸업 후 바쿠고의 부친과 미도리야의 모친이 재혼한 AU

※세계에 개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출생의 비밀 없습니다. 근친 X



백수가 아닌 이상 주중의 아침은 모두가 바쁘기 마련이다. 미도리야는 아직 낯선 교복의 단추를 꼭꼭 잠가 등교 준비를 마쳤다. 시계를 보니 오늘은 아직 느긋하게 밥 먹을 정도의 여유가 있을 듯했다. 그래 봤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아저씨, 아니 아버지는 이미 집을 나선 지 오래였겠지만.


방문을 여니 이 층에까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미도리야는 계단 난간을 잡고 한발 한발 일 층으로 내려갔다. 부엌에선 어머니가 자식들이 먹을 것을 식탁에 나르고 계셨다. 잠시 기다리던 미도리야는 접시가 다 놓인 뒤 의자에 앉았다. 깔끔하게 차려진 상에 어울리는 평범한 대화가 오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이즈쿠구나. 가볍게 샐러드랑 빵, 괜찮지?”

“네. 맛있겠어요. 잘 먹겠습니다.”

“이왕이면 카츠키랑 같이 내려와서 먹지. 왜 매번 먼저 내려오고 그러니?”


윽. 포크로 쿡 찍은 샐러드를 한입 먹던 미도리야는 어설프게 웃었다. 우리 모두 지각은 안 하잖아요. 알아서 준비하고 있을 텐데 방해하기 싫어요. 변명이란 걸 알아채신 걸까, 혹은 그저 걱정스러웠을 뿐일까. 미도리야는 어머니가 더 재촉하기 전에 급히 음식을 입에 가져다 댔다. 다행히 어머니는 금방 아들에게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해왔다. 천천히 먹어. 체하면 어쩌려고. 미도리야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입 밖으로 꺼냈다간 등짝을 얻어맞을지 모를 대꾸였다.


잠자코 먹기를 약 십오 분, 자기 몫으로 주어진 식사를 반 조금 넘게 비웠을 무렵이었다. 미도리야는 잘 움직이던 젓가락을 딱 멈췄다. 동물적인, 한 사람에게 유독 잘 발휘되는 감각이 한껏 몸을 세우고 찌릿거렸다. 아. 내려오겠구나. 아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음에도 미도리야는 가만히 수저를 놓았다. 드르륵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섰다. 재빨리 현관문을 향해 다리를 움직이는 동시에 옆에 두었던 가방을 어깨에 멨다. 문고리를 잡아 돌려 밖으로 나가자 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즈쿠! 아직 남았잖아. 배고프지 않겠어?”

“문제없어요. 다녀오겠습니다!”


겨우 인사만 남긴 미도리야는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쫓기듯 문을 닫았다. 편안하게 걷는 것보다 다소 빠르게 움직이니 쑥쑥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기를 한참, 눈앞에 역 간판이 보일 만큼의 거리를 지나고 나서야 미도리야는 들썩이는 숨을 가라앉혔다. 속도에 늘어졌던 그림자가 헐레벌떡 주인의 발치에 고이려 달려들었다.


‘…이러면 뭘 해.’


소용없는데. 미도리야의 짙은 한숨이 땅에 내려앉았다. 무거운 걸음이 역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대로 학교를 향해 달리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

한창 뛰어놀기 좋아하던 어릴 때마저 수업에 별다른 사감을 가진 적이 없었건만. 미도리야는 교과서의 글자는커녕 내용을 설명해주는 목소리에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등에 자꾸만 눈길을 빼앗겨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교복으로 잘 가려진 뒤태는 턱을 괴고 있기라도 한 건지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미도리야는 자꾸만 상상하고야 말았다. 모양 좋은 두상 아래로 어깨에 붙은 근육이 날개뼈를 타고 유려하게 척추를 타고 흐르고 있겠지. 피부 위로 드러날 만큼 단련된 몸은 분명 아름다우리라. 뭉게뭉게 피어난 환상이 현실 위를 얇게 덮자,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꾸만 꿀꺽 침이 넘어갔다. 그때였다.


“어이 미도리야. 집중해라.”

“아, 네! 죄송합니다….”

“또 그러면 혼난다.”


얼마나 넋 놓은 티를 내고 있었던 걸까. 교사의 지적을 받은 미도리야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분명 귀까지 빨개지고 말았으리라. 애써 책상에 놓인 희고 검은 면에 눈길을 고정한 그의 주변에 급우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둥둥 떠다녔다.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미도리야는 단 하나에 안도했다. 모두가 힐끔 저에게 짧게나마 시선을 던져도 오직 한 명만이 여전히 삐딱하게 앞을 보고 있다는 것에. 고집스럽게 느껴질 만큼 돌아보지 않았다.


‘다행이야.’


창피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속내 모서리가 서늘해졌다. 미도리야는 종이를 넘기던 손에 힘을 주었다. 바스락, 구겨지는 소리가 꼭 제 마음 같았다.



*

높이 떠올랐던 해가 둥근 길을 따라 가라앉자 아이들은 내일 보자는 말을 서로 나눴다. 미도리야 또한 친구들과 손을 흔들어 헤어진 뒤 교문을 나섰다. 굳이 혼자 가는 이유를 들자면 저 멀리 멀어져가는 사람을 지표 삼아 걷고 싶어서였다. 부지런히 발을 놀려봤자 열 걸음 밖에서 뒤쫓을 뿐이었지만, 이마저도 감지덕지 아니냐고 자신을 달랬다. 막상 마주하면 분명히 도망치고 싶어 할 거면서 욕심이 과하다고. 참으라고. 하지만 얼굴을 보고 널 부르고 싶어. 아니, 이대로 훔쳐보게만 해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부딪칠 수밖에 없는 욕구가 마찰음을 내며 사각거렸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앞서가던 이가 휙 몸을 돌렸다. 바쿠고 카츠키, 이제 형제가 되어버린 동급생 겸 옛 친구가 성큼 다가왔다. 그가 제 손목을 덥석 잡고 힘주어 원래 가던 방향으로 끌고 갈 때조차, 미도리야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었다. 그저 바쿠고와 걸음을 맞추려 허둥댄 것 빼고는.


“어, 저기, 어?”

“느려터져선. 빨리 좀 안 오냐?”

“아, 미안해 캇, …형.”


몇 개월이라도 먼저 태어난 걸 혹시 신경쓸까봐 급히 고친 호칭에 바쿠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마지막은 괜히 붙였나. 미도리야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만족스러울까? 아니면 괜한 가족 놀이냐며 질색하고 있을까. 좀 더 생각하고 말할 걸 그랬다. 자신이 알던 성격이라면 후자에 가까울 것 같아 미도리야는 후회했다. 무섭게 뛰는 심장 박동이 맥박으로, 바쿠고의 손바닥으로 전해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꺼내지 못했다. 바쿠고 역시 조용했다. 아마 이유는 다르겠지. 친해질 필요를 못 느꼈다거나, 이 정도로 충분하다거나.


둘은 그대로 손목을 잡힌 채로 함께 걸었다. 서로를 보지 않은 묵묵한 걸음은 무덥게 숨이 막혔다. 한여름이 훌쩍 찾아온 것만 같은 침묵은 혼자서만 괴롭고 달았다. 그러길 한참, 집에 거의 도착해서야 바쿠고는 미도리야를 놔주었다. 제법 오래 잡혀 있어 온기의 잔상이 남은 손목을 다른 손으로 주무르던 미도리야는 애써 표정을 감추었다. 열심히 피하는 나를 용납해주던 네가 왜 오늘 갑자기 이랬는지 알 것 같았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어머, 함께 왔네?”


저희를 맞이해주는 어머니의 얼굴이 유독 밝아지는 게 보였기 때문에. 성급하고 분노에 잘 휘둘리는 듯이 굴던 바쿠고는 때로 이렇게 속 깊게 헤아리고 있다는 티를 내곤 했다. 감탄스러운 동시에 낯설지 않은 무언가가 속을 채웠다. 소위 말하는, 실망이나 절망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먼저 씻을게요.”


저녁밥이 아직 덜 되어서 어쩌냐는 어머니의 말에 미도리야는 선수를 쳐 대답했다. 빨리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미성숙한, 없애야 마땅할 부당한 감정을 들켜선 안 되니까. 미도리야는 바쿠고를 지나쳤다. 뒤통수가 따끔한 환상이 느껴지는 걸 애써 모른척했다. 한심하단 눈빛일까. 아니, 이러면 마치 네가 나를 보고 있기를 바라는 것만 같잖아. 착각도 유분수다. 그럴 리 없어.


혼자 삭이며 계단을 올랐다.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자 아들이 된 소년에게 이것저것 말을 붙이는 어머니와, 순순히 대답하는 바쿠고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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